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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n번방 네임드와 일베

by 게으른 권선생 2020. 3. 31.

 

예민한 이야기 하나 할까한다.

 

사진은 요즘 코로나만큼 공분을 사고 있는 N번방 운영자들의 연합방이다.

(출처 : 한겨레 [단독] n번방 운영자들, 연합방 만들어 수사회피 모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4447.html#csidx733d3a6eba20f5a89845349b87d294c )

 

온라인의 익명성 뒤에 숨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만행들을 저지르고 수사를 회피할 목적으로, 소위 그 방의 네임드(named)라는 것들이 모여서 연합방을 만들었다는 것이 기가 찬다. 

 

이들에 대한 여러 천인공노할 행적들은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으니 굳이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단지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의 아이디와 프로필 사진을 접하면서 말이다.

 

몇년전부터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불안감이 생겼다.

나의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뭉치면 무식해지고 용감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남학생들이 많은 교실에서 노골적으로 '~노? 노.'거리 거나 '운지'라는 말 등을 하며 낄낄거리는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을 했고 그것이 '일간베스트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유행하는 고인 능욕 드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200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단지 몇 초만에도 초사이어인이 되는 손오공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날 수업에 온 아이들에게 얼굴을 붉히며 악을 쓰듯 다그쳤다.

'그곳에 글을 쓰는 행위는 배설이다. 그 글을 보고 낄낄거리고 웃는 것은 마치 똥을 만지면서 쾌락을 느끼는 스카톨리지, 배설물 성애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하나같이 '저희 일베 안해요'라는 것이다.

 

학급에서 영향력이 있는 아이들이 일베 사이트에 들어가서 재미있어 보이는 말들을 교실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유행어로 만든 것이었다.

일부 아이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 아니면 모르는 척하면서 집단적 무지함에서 오는 이상한 쾌감을 느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입증되지 않은 극우세력들의 가짜 뉴스에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청년들의 우익화가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우스꽝스럽게도 광주항쟁에 대한 저급한 날조와 자극적인 여동생 노출 사진 유포, 강간 동영상, 심지어 수간 등등으로.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일베에 대한 지적이 여러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나고 심지어 '일베 미러링'을 표방한 자칭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등장으로 성대결로 이어지는 듯하였다. 자성의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일베에 대한 인식들도 '믿고 거르'게 되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미지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당당하게 '나 일베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런 만큼 온라인 상에서는 더 과감해졌으리라 본다.

요즘 강의실에서는 사실 그들의 선배들이 쓰던 천박한 '그들만의 유행어'를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더 무서웠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 연령이 만18세로 조정되는 법안이 통과될 때도 사실 기쁘지 않았다. 건강한 의식을 갖추고 있는 아이들의 훨씬 많겠지만 또 '엄석대'같은 아이가 일베를 하며 잘못된 정보로 선동한다면 결과는 비극이 아닐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일베는 극우 거짓 선동세력이다. 엄연히 다른 세력이니 이 글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는 점잖은 분이 없기를 바란다.

 

텔레그램의 n번방에 대한 뉴스가 한겨레신문과 jtbc 스포트라이트 등에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n번방의 박사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헤드라인에 등장했다. 조주민이라는 주범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경찰청의 발표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광주지역민들을 '홍어'라고 일컫고 공공연히 일베임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그는 검거 이후 언론들의 카메라 앞에서 범죄에 대한 인정이나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대신 기겁할 만한 언급을 했다. 유명인사들 몇 명을 피해자라고 칭하며 그들에게 사죄했고 악마의 삶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하다는, 놀랍도록 뻔뻔한 말을 들으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온라인에서의 허망한 제왕적 지위를 누려본 탓인가? 볼펜을 삼키고 벽을 들이받으며 자해한 흔적이 남은 머리에 묻혀 놓은 듯한 일회용 밴드, 반성의 기미라고는 1도 없는 뻣뻣한 목보호대와 그의 허세는 좋은 대비를 이루어서 오히려 코메디를 보는 듯했다. 이후 n번방에 제법 지분이 있는 네임드들이 수사 회피를 위해서 만든 연합회의 아이디와 프로필을 보니 더욱더 가관이었다. 정말 일베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는 온갖 허세와 주접을 떨며 관심을 구걸하여 그들만의 인정을 얻었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디지털 사기 스킬이 탑재된 '찌질이'들에 지나지 않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일베 사이트 폐쇄와 관련된 글이 수십 개에 달하고 그에 동의를 표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일베 회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릇 안의 음식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걷어내주는 것도 관리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이를 방치한 것도 동조하는 셈이다. 자정과 반성의 기능을 잃었다면 외부의 힘이 가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제2, 제3의 n번방들이 디지털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고 이들은 다시 여성에 대한, 아니 인간에 대한 존엄을 무시하고 가벼운 현행 법적 처벌쯤은 감수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 또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회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계속 유포하고 선동하고 있는 쓰레기들은 정리했으면 한다. 

 

나는 단지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생각하고 건전하게 비판할 줄 아는 당당한 사람으로 자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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